서론 — 2만 명이 들여다본 질문
이유를 물었더니 이유가 아닌 것들이 돌아왔다
어느 밤 소셜미디어에 짧은 질문 하나가 올라왔다. 창업한 사람들에게 묻는다는 것이었다. 고생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고 감당해야 할 위험도 그렇게 큰데, 왜 굳이 그 길을 골랐느냐는 물음이었다. 하루가 지나기 전에 조회수는 2만을 넘겼고, 그 아래로 답글이 줄줄이 달렸다. 답을 단 사람들은 대체로 이미 가게 문을 열었거나 사업자등록을 마친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이 답들을 통계로 삼을 생각이 없다. 표본이라 부르기에는 수가 너무 적고, 게다가 일부 답글은 가려진 채였다. 스물네 개의 문장이 우리가 읽을 수 있었던 전부다. 다만 짧은 문장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에만 드러나는 결이 있다. 설문지 앞에서라면 아무도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제1부 — 가장 많은 답은 이유가 아니었다
아홉 명이 후회를 말했고, 아무도 그만두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스물네 개 중 아홉 개가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몰랐으니까 했다는 것이다. 알았더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고, 과거의 자신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고 싶다고 했고, 이렇게 힘들 줄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생각이 짧았다는 자책도 있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이 돌아온 것은 이유가 아니라 후회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조다. 이 답들은 하나같이 웃으면서 말한다. 자음을 늘려 쓰고 오타를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둔다. 진짜로 무너진 사람은 이런 문장을 쓰지 못한다. 이건 술자리에서 나올 법한 말투이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 앞에서만 나오는 종류의 농담이다.
후회를 말한 아홉 명 중 그만두겠다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이 이 스레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어긋남이다. 후회는 분명 진심이다. 그러나 후회의 문장 다음에 와야 할 말, 그러니까 그래서 이제 접겠다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후회는 결론이 아니라 인사말에 가깝다. 이 바닥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인 것이다.
제2부 — 돈이라고 답한 사람들
가장 짧은 답 셋과, 돈이 빠져나가는 이야기 셋
세 사람이 돈을 말했다. 대박이 나면 부자가 되니까, 돈 때문에, 그리고 돈이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한 답. 세 답 모두 열 글자를 넘지 않았다. 짧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대답이다. 돈은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설명이 필요 없는 이유였다. 부연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궁색해지는 종류의 답인 것이다.
흥미롭게도 돈이 들어오는 이야기를 한 사람이 셋이었다면, 돈이 빠져나가는 이야기를 한 사람도 정확히 셋이었다. 돌아서면 세금 내는 날이라는 한탄이 있었고, 부가가치세를 내고 나니 통장이 비었다는 구체적인 금액이 있었고, 어느 해까지는 그래도 할 만했다는 회고가 있었다. 시작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금의 장부가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스레드에서 가장 길게 답한 사람은, 돈만 보고 할 일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돈을 말한 답이 가장 짧았고, 돈이 아니라고 말한 답이 가장 길었다.
제3부 — 리스크를 되묻는 사람들
질문을 그대로 돌려준 세 사람
세 사람은 답 대신 질문을 되돌려주었다.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일이 있느냐고 물은 사람이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40년을 같은 직장에서 보내야 하는데 그쪽이 정말로 덜 위험한 것이냐고 되물은 사람도 있었다. 질문자가 전제로 깔아둔 것, 그러니까 창업은 위험하고 취업은 안전하다는 구도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 사람의 답은 결이 조금 달랐다. 자기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이 문장에는 선택이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창업이 여러 갈래 중 하나로 놓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문이 다 닫힌 뒤에 남아 있던 하나였다는 뜻이다.
우리는 창업을 도전이라 부르지만, 어떤 사람에게 그것은 남은 것이다.
이 대목은 창업을 다루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놓치는 지점이다. 창업 담론은 대체로 무엇을 걸고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걸 것이 애초에 그것뿐이었던 사람에게 그 질문은 성립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한 것이 아니라 위험 말고는 없었던 것이다.
제4부 — 가장 긴 답은 도파민이었다
유일하게 길게 쓴 사람이 말한 것
한 사람은 자기 일을 게임에 빗대어 설명했다.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시작해 동네에서 자리를 잡고, 옆 가게가 비어 있는 시간에 내 가게 앞에 줄이 서는 장면을 말했다. 손님들이 그 메뉴를 이야기할 때 우리 가게 이름이 함께 나오는 순간을 말했다. 그 감각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되지 않는다고 했다.
스무 자 남짓한 답이 대부분인 자리에서 이 답만 유독 길었다. 사람은 자기가 정말로 아는 것에 대해서만 길게 말한다. 후회는 한 줄이면 충분하지만 무엇이 자기를 붙잡고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문장이 필요해진다.
비슷한 결의 답이 하나 더 있었다. 자기 안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싶은 마음이 피어났다는 것이다. 표현은 가볍지만 가리키는 곳은 같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정해서 하는 일이라는 것. 두 사람 다 돈을 말하지 않았고, 두 사람 다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제5부 — 세 번째 창업을 앞둔 사람
후회와 재시도가 어떻게 한 사람 안에 같이 있는가
한 사람은 자기 이력을 세 문장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몰라서 했고, 두 번째는 이제 알겠으니까 했고, 세 번째는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농담의 형식을 하고 있지만 이 문장은 앞의 아홉 개를 전부 설명한다.
고통은 정확하게 기억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그때 아팠다는 사실뿐이고, 얼마나 어떻게 아팠는지는 시간이 지우고 간다. 반면 좋았던 순간은 장면째로 남는다. 줄이 서던 날, 처음으로 재주문이 들어온 날. 그래서 후회의 총량과 재시도의 결심은 같은 사람 안에서 충돌하지 않는다. 둘은 서로 다른 기억 창고에 들어가 있다.
망각을 어리석음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망각이 없으면 두 번째 가게도 없다. 이 사람이 농담처럼 적은 문장은 창업이라는 행위가 왜 끊이지 않는지에 대한 가장 정직한 설명일지 모른다.
결론 — 이유는 시작할 때 손에 없다
희망이 있는 쪽으로 걸어간 사람들
이 스레드에서 가장 오래 남는 답은 지옥에 관한 것이었다. 희망이 없는 곳에 있느니 차라리 더 뜨겁더라도 희망이 있는 쪽을 고르겠다는 답이었다. 이 문장은 창업이 덜 힘든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뜨겁다고 인정한다. 다만 견딜 수 없는 것은 뜨거움이 아니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감각이라고 말할 뿐이다.
질문한 사람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대체로 이유가 아니었다. 시작의 이유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기억하는 사람도 그것이 좋은 이유였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반면 계속하는 이유는 다들 어떻게든 말할 수 있었다. 줄 서는 손님, 내가 정하는 하루, 아직 남아 있는 다음 달.
창업의 이유는 출발선에서 손에 쥐고 가는 것이 아니라, 걷는 동안 뒤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방향을 조금 틀어야 한다. 왜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남게 했느냐를 물어야 한다. 앞의 질문에는 후회가 답하지만, 뒤의 질문에는 각자의 구체적인 장면이 답한다. 그리고 브랜드를 만드는 일은 바로 그 장면들을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옮겨놓는 작업이다.
작은 물고기들이 무리를 이루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마리씩 떼어놓고 보면 왜 저기 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각자 다른 곳에서 흘러들었고 저마다 다른 사정이 있다. 그러나 함께 있는 동안 무리는 하나의 형태를 갖고, 그 형태가 저들을 지킨다. 이유는 그 안에 있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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